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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신식우편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금석 홍영식선생을 중심으로 신진 개화파 정객들의 끈질긴 노력으로 1884년 4월 22일 (음력 3월 27일) 국왕의 칙명으로 우정총국이 설치되고 1884년 11월 18일 역사적인 우정 총국위 업무를 개시함으로서 우리나라 최초로 우표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발행된 우표가 액면 단위가 문이었기에 부쳐진 이름입니다.

문위 우표는 5문,10문,25문,50문,100문의 5종으로서 인쇄는 대일본제국 정부 대장성 인쇄 국에 인쇄를 의뢰하고 우정총국개국과 동시에 판매할 예정 이었으나 우정총국 개국일 까지 5문과 10문 2종만이 도착되었고 나머지 25문, 50문, 100문은 도착이 되지 않았습니다.
일본에 인쇄 의뢰한 우표의 수량은 5문 우표가 500,000매, 10문이 1000,000매, 25문 50문이 각각500,000매 100문이 300,000매 총 2,800,000매였습니다.
그러나 이들 우표 중 5문과 10문이 최초로 우정업무가 개시된 한성과 제물포간 에 체송된 우편물에 사용되었을 뿐 나머지 25문, 50문, 100문은 갑신정변이 일어난 12월 4일 까지 도착이 안되어 사용하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1884년 11월 18일 우정업무가 개시되고 동년 12월 4일 우정총국 개국기념 연회를 계기로 개화파의 김옥균,박영효,홍영식 등이 일으킨 갑신정변의 실패로 모처럼 이룩한 신식우편 제도가 애석하게도 1884년 12월 6일 폐지되고 말았습니다.
이로 인하여 1895년 우편이 재개될 때까지 긴 공백기를 갖지 않을 수가 없는 불운을 맞기도 하였습니다.

문위우표가 1884년 11월 18일 우정총국 업무개시와 함께 최초로 사용된 우표이긴 하나 과연 20여일 동안에 얼마나 우편물에 사용되었는지 현재까지 아무런 참고가 될 만한 근거가 남아있지 않아 답답하기만 할 뿐입니다.
우취가들은 소인된 우표를 참고하여 조사를 시도하고는 있으나 지금까지 발견된 소인된 우표가 불과 20여장 미만이고 확증적인 자료가 될만한, 실제로 체송된 실체봉피가 110년이 지난 지금까지 한 장도 발견되지 않고 있어 과연 실제로 사용되었는지 여부에 대하여는 알 길이 없습니다.
사실 양반 계급을 숭상하던 당시 사회상으로 보아 우편을 이용하여 의사를 전달할 만한 사람은 거의가 지식층인 양반들 뿐이었는데 지체높은 양반들이야 하인 등을 시켜 인편으로 직접 전달하는 것이 양반들의 체통이고 예의라고 생각하던 시절이라 우체국에 의한 우편의 이용이 거의 없었을 것으로 봐야 할 것입니다.
당시 우편을 이용한 사람은 주로 우정총국 개국에 직접 참여한 사람이나 이에 인연이 있는 사람 혹은 개화의 영향을 받은 일부와 주한 외국인 등이라 보는데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우정총국 개국기념연을 계기로 일어난 갑신정변의 실패로 일시에 개화의 거센 파도가 중단되고 우정총국의 폐쇄는 물론 정변에 직접 가담한 사람은 삼족을 멸하는 극형을 당했을 뿐 아니라 정변이나 우정총국에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는 사람은 그 자취를 감추게 되었고 증거를 없애기 위해 오고간 서신이나 우편물 등을 철저히 없앴거나 불태워 버렸기 때문에 당시의 우편자료가 없는 것도 이해가 갑니다.
따라서 어딘가 있을 당시의 실체봉피가 발견된다면 이것이야 말로 국내외적으로 대단한 전품일뿐더러 우편자료 연구에 결정적인 증거물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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